취재 여행 중이던 김요섭은 18년전 소식도 모른 채 헤어진 그의 첫사랑이자 아픈 상처인 '윤'을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들른다. 18년만의 재회 - 사회주의가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회색빛 감도는 우울한 도시 모스크바에서 '윤'은 아직도 과거의 상처를 굽은 등에 지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굽은 등, 지금도 자꾸만 삐는 요섭의 왼쪽 발목. 김요섭은 위장된 평화 속에 묻어두고 싶었던 지난날의 아픔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보도지침이 내려오고 매일같이 계엄사 보도처에 가서 편집대장을 검열 받아야 했던 폭력과 야만의 언론 통제 시절. 신문사 편집기자였던 김요섭과 '윤'은 엉뚱하게도 당시의 정세를 일기예보에 빗대어, 1980년 4월 3일자 석간 사회면 머릿기사로 '비가 내린다 삼라만상에'란 제목의 기상정보를 내세우고는 자신들에게 내려진 수배령을 피해 광화문 뒷골목의 후미진 여관으로 몸을 피한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강박관념에서 인지 아니면 혼자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인지 김요섭은 '윤'과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철저하게 몸부림 친다. 그러나 그의 몸은 정신을 따라 주지 않았다. 그때 들이닥친 수사관에 의해 두사람은 체포된다. 김요섭은 사흘만에 풀려나지만 '윤'은 실종되어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1980년 4월 이후, 아직도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윤'을 앞에 두고 김요섭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 보게 된다. 야만의 80년대를 묻고 살아온 우리는 어떤 희망을 발견했는가? 성급한 화해와 평화에의 기대가 얼마나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는가? 또 다시 김요섭은 '윤'과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덤벼든다. 오늘은 몸이 정신을 따라 줄런지?